2009년 09월 28일
파나메라 터보 시승기

어제 경기도 모처의 와인딩 매니아들의 성지(聖地)에서 포르쉐의 따끈한 신차인 파나메라 터보를 시승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서울을 출발하여 중간에 올림픽대로에서 카이엔 터보S를 상대로 초고속 술래잡기를 잠깐 해보니 이건 카이엔 터보S의 비행기 이륙하는 느낌보다 못해도 두 배 이상은 더 강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훨씬 더 낮은 시트 포지션 때문인 듯 한데 카이엔 터보는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면서 손잡이를 꼭 붙들게 만드는 반면, 파나메라 터보는 시트에 완전 파묻혀서 꼼짝을 할 수가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파나메라 터보S가 나온다면 그 때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군요...... .

공차중량(DIN) 1,970kg, 최고출력 500HP, 최대토크 71.4kg.m/2,250~4,500rpm으로 1마력당 3.94kg의 중량비를 가지니 이건 거의 슈퍼카급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참고로 아침에 술래잡기를 했던 카이엔 터보S는 4.42kg의 중량비로 50마력의 플러스 요인에도 불구하고, 480g 정도 더 무겁습니다. 그래도 그 덩치를 생각해보면 정말 괴물은 괴물인 셈 입니다.
본격적인 시승기에 앞서서 포르쉐의 기초가 되는 911의 컨셉을 살펴보면 4인 가족이 일상생활과 드라이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카 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컨셉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규상 2인승으로 분류됩니다만)
하지만 실제로 911에 4명이 탄다는 것은 어린 자녀 2명을 뒷좌석에 태우고 간소한 짐을 꾸려서 근거리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정도고, 마트 한 번 가면 왠만한 세단 트렁크에 빼곡히 실릴 정도로 이것저것 쇼핑을 하는 지금 시대의 생활 습관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정작 그러한 컨셉이 충실하게 실현된 차량은 카이엔이었지만, SUV라는 차량 형식은 물론, 전반적인 성격이 911과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정반대로 가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에 '포르쉐가 SUV를?' 이라는 편견과 회의적인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오프로드 성능까지 챙기느라 카이엔은 정말 괴물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등장한 파나메라는 포르쉐의 첫 4도어 세단이라는 형식을 떠나서, 포르쉐가 그 동안 추구해왔던 목표가 무엇인지 그것을 현실로 표현한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라 생각합니다. 4명 모두가 편안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고, 넉넉한 적재공간이 구비되어 있으며, 장거리 여행에도 피로하지 않은 편안한 승차감과 옵션들, 거기에 충분히 포르쉐다운 성능까지. 이제는 '포르쉐=911' 이란 색안경을 벗고 진정 포르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귀기울여 들어 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보나, 실물로 보나 거대한 덩치의 4인승의 대형 세단이라는 점과 2톤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생각해보면 결코 와인딩 같은 곳에 어울릴 만한 차량은 아닙니다만,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던지 포르쉐의 DNA를 물려받은 모델인 이상, 만약 그것이 트럭이라 할지라도 포르쉐에게 있어 고성능의 달리기 성능 만큼은 기본적으로 갖춰야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인 느낌은 분명 포르쉐다운 느낌, 단단하고 묵직하면서 힘찬 느낌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포르쉐 모델들과의 차이점은 거기에 부드러움이 추가되었다는 것 입니다.
사실 그곳의 노면이 얼마 전에 새로 도로 포장공사를 마쳤다고는 하나, 아직도 노면이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구간구간 패인 곳들도 많고, 특히 정상에서 검문소로 내려오는 도로는 '이곳이야 말로 한국판 뉘르' 라 생각될 만큼 노면이 좋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노면을 달릴 때 포르쉐들의 반응은 대체로 좀 신경질적인 것 입니다. PASM이라는 마법과 같은(?) 옵션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사실 일반적인 차량들과 비교하면 결코 부드러운 반응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런 상황에서 출렁거나 통통 튀다가 컨트롤을 벗어나는가, 아니면 꾸준히 운전자의 의도대로 방향을 끌어 가는가 하는 점이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덕분에 파나메라를 운전하는 내내 그 크기에 대한 부담은 911과 같은 컴팩트한 모델들을 운전할 때 만큼 여유로워 지더군요. 이것은 파나메라가 위치하는 세그먼트의 타 차종들과 비교했을 때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1,970kg이라는 무게도 포르쉐는 마치 파나메라에 마법의 주문을 걸어놓은 듯 합니다. 엔진룸을 가득 채우는 V8 4.8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프론트에 배치하고 54.6 대 45.4의 무게배분을 보이는 만큼 와인딩 코스에서는 무거운 무게와 더불어 그 9.2의 차이가 그대로 프론트 헤비의 반응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건만, 그러한 생각은 그저 쓸데없는 기우일 뿐 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 무거움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쭉 깔려서 지면을 누르는 힘을 더해주는 듯이 느껴지다가, 코너 깊숙이 공략해 들어가는 순간 그 무게는 운전자의 엉덩이 부근에서 중심점을 이루며 훨씬 더 적극적인 코너 공략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주는 추(錘)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몇 번씩 직접 운전을 해 보아도, 그리고 동승을 해 보아도 그런 느낌은 똑같이 이어지고, 함께 테스트 공략에 나섰던 사람들 모두가 일관되게 느꼈던 반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직분사 엔진, 그리고 PDK와의 조합이었습니다. 특히 PDK는 처음 런칭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의외로 이전의 팁트로닉 S의 꾸준히 밀어내는 토크감이 그립다거나, 포르쉐의 박서 엔진과는 완벽한 궁합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는 불만의 소리들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불편함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포르쉐도 지속적인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그것이 완벽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V8과 PDK의 조합은 너무나 환상적인 궁합이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주행환경에 따라 너무나 효율적이고 빠른 반응과 함께 파워를 이끌어내고 다루는 솜씨가 분명 911이나 987의 그것보다 훨씬 진일보한 감각입니다. 스포티한 주행 환경에서도 굳이 스포츠 모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이것이 진정한 PDK의 성능이다 할 만한 피드백을 보여 주더군요.
돌아오는 길, 파나메라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던 저의 마음은 어느새 파나메라를 너무나 애타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한 대 만으로도 모든 갈증이 풀릴 것 같은 느낌, 카이엔으로 저 사막지대부터 뉘르부르크링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해도 무언가 부족한 듯 느껴지던 아쉬움 같은 것은 파나메라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주 S600을 시승해보고 '궁극이란 표현이 부족하다' 라고 했는데, 또 하나의 궁극을 찾아낸 기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파나메라의 등장에 대해서 인류의 월면착륙과도 같다는 엄청난 표현을 빌리고 싶습니다. 인류에게 월면착륙이 꿈 속의 세상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던 것 처럼, 파나메라 역시 포르쉐와 포르쉐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있어 여러 의미로서의 꿈과 목표가 현실이 되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 by | 2009/09/28 17:13 | Porsche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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